내가 데이터 사이언스의 길을 걷게 된 과정

6 분 소요

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 앞으로 이 블로그에 써 내려갈 많은 이야기들을 하기에 앞서 내가 왜 굳이 잘 운영하던 회사를 떠나서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하기로 선택했는지에 대해 정리하지 않으면 그 뒤에 올 이야기들이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내 스스로도 계속해서 이 길이 맞는지, 맞는다면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걸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이제 막 첫 발은 내디딘 시점에서 나의 초심이 어떤 상태인지 기록을 남겨놓아야 목표를 정하고 다음 이정표를 세우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글쓴이는 어떤 사람인가

만 29세, 개발 비전공자. 미국에서 심리학과를 전공했고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지인과 함께 서비스 스타트업 창업을 하여 퇴사 전까지 4년간 운영 및 서비스 기획을 담당했습니다. 운영하던 회사는 서비스도 한창 성장 중이었고 투자유치까지 한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나와 더 잘 맞는 일을 찾아 내가 원하는 전문성을 키우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아쉽게 놓쳤던 기회들

아래는 제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성장과정 속 배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설명보다는 일기에 가까워서 굉장히 개인적이고 어떻게 보면 유치할 수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고 싶어 할까?’라는 궁금증에 대해 순수하게 데이터 사이언스와 관련된 정보만 읽고 싶으시다면 다음 주제로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 아주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가까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상태로 성장을 했던 것 같다. 4살 때 삼촌 집에서 386 컴퓨터로 도스 명령어를 입력해야 실행이 가능했던 페르시아의 왕자를 했던 기억부터, 가정용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 남들보다 일찍 집에 컴퓨터를 놔주신 부모님 덕에 당시 또래들보다는 확실히 더 일찍 컴퓨터를 이해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처음 가졌던 꿈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었는데, 개발자라는 호칭조차 널리 퍼져있지 않던 그때 정확히 뭔지도 몰랐던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싶어 찾아갔던 컴퓨터 학원에서는 프로그래밍 대신 워드프로세서와 컴활 자격증을 따게 해주었다.

    그나마 프로그래밍의 길에 가장 근접했던 일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수업으로 컴퓨터 수업이 생기면서 일어났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아쉽게 놓친 기회가 하나 찾아왔었다. 반 전체가 다 같이 CRT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하는 거라고는 한컴 타자 연습과 피카츄 배구, 그리고 볼 마우스의 공을 몰래 빼가는 것 밖에 없었을 때 새로 부임한 컴퓨터 선생님은 나의 깊은 관심을 알아보셨는지 같이 C++을 공부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었다. 아직도 반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서 선생님과 교실에 남아 진지하게 면담을 하던 그 순간이 너무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이상하게 그 뒤로는 어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나고 결론적으로는 프로그래밍을 배우지 못했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서 정확하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아마 그 당시가 이미 2학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였고 곧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컴퓨터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일반 학원을 보내고 중학교 입학을 준비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나 할머니가 특히 컴퓨터를 배우고 직업으로 갖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을 하셨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아무래도 그 당시에는 컴퓨터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 다들 잘 모르기도 했었고 내가 하필 그냥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고 얘기를 해서 다들 반대를 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다시 컴퓨터를 학문으로 접할 계기가 없었고 프로그래머의 꿈은 희미하게 지워지게 되었다. 웬만해서는 과거의 일에 대해서 후회를 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는 편인데, 유독 그때의 일에 대해서만 만약 그때부터 내가 코딩을 배웠다면 슈퍼 개발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막연한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어쩌면 이런 어렸을 적의 기억 때문에 지금에서라도 컴퓨터와 관련된 일에 뛰어들고 싶어진 것이 아닐까 싶은 심리학적인 고찰도 하게 된다.

  • 또 다른 아쉬움은 대학교에 가서도 다시 컴퓨터 공학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우선 앞의 기억들 때문에 대학교에 가서 컴퓨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지워진지 오래였다. 하필 대학 진학을 앞두었을 때 마땅히 꿈이라고 할 것이 없었고, 그 당시에 개발직군으로 취업하면 그 끝에는 치킨집 사장이 되는 방법밖에 없다는 농담이 돌아다닐 정도로 컴공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암울했다. 그래서 대학을 진학하며 선택한 전공은 그 당시 학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심리학이 되었다. (다행히 심리학을 전공한 것은 후회한 적이 없고 데이터 사이언스, 인공지능을 배우려는 지금의 선택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컴퓨터공학에 대한 관심과 끌림이 학교를 다니면서 다시 생겨나게 되었다. 나는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과정들을 선수행 할 수 있었고 대학교는 학기 당 학점을 초과 이수해가며 다닌 덕분에 4년제 대학을 2년 반 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이건 사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부모님을 위해 학비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그랬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시간에 여유가 생기다 보니 컴공을 복수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빚이 많이 있던 가정 형편에 미국의 대학 학비는 너무 큰 부담이어서 그 당시에는 고민할 여유보다는 빨리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조금 더 일찍 개발을 배우고 관련 직종으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던 기회들을 모두 놓치게 되었다.


데이터 사이언스 관련 경험

  •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을 때 특히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을 세부전공으로 더 깊게 공부했는데, 인지심리학이란 말 그대로 사람이 지식이나 감각 정보를 어떻게 인지해서 습득하고 생각하는지를 다루는 분야입니다. 재밌는 건, 인문학적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임상심리학이나 행동심리학과는 달리 인지심리학은 비교적 최근에 연구가 시작되어 과학적인 접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중심에는 컴퓨터가 있다는 것입니다.

    1950년대에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정보처리 관련 연구들이 많이 이루어졌고, 여기에 영감을 받은 심리학자들이 사람의 뇌가 작동하는 방법을 컴퓨터의 정보처리 과정에 빗대어 연구하면서 실제로 많은 유사점이 있음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한 번에 몇 개까지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지, 원과 선을 어떻게 구분하여 인지하는지, 그리고 UI/UX 관련 분야에서 많이 차용하는 힉스의 법칙, 게슈탈트 법칙, 웨버의 법칙 등이 모두 인지심리학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들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바탕으로 컴퓨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컴퓨터를 연구한 덕분에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다는 점을 굉장히 흥미롭게 봤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분야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앞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 덕분에 심리학 및 뇌과학 분야가 얼마나 더 같이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기도 하고, 또 반대로 컴퓨터 비전이나 음성인식 분야에서 사람의 인지 방식을 컴퓨터에 대입시켰을 때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어느 정도까지 따라올 수 있을지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심리학을 전공하며 통계를 필수로 배워야 했던 점도 데이터 사이언스에 입문하기 위한 허들을 상당히 많이 낮춰줬습니다.

  •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경영 관련 멘토링이나 강의도 상당히 많이 참여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정말 크게 떠오른 주제가 데이터 중심으로 사고하고 경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데이터 분석을 지원해 주는 스타트업 지원 사업들도 종종 있고 제가 운영하던 회사도 데이터 분석을 몇 번 지원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데이터 분석 지원을 받아보면 매번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가, 첫 번째는 대다수의 스타트업에서는 솔루션까지 필요로 하거나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정도의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데이터 솔루션 회사들이 큰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익숙하다 보니 새롭고 낯설 수 있는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들에 대해 이해도가 낮아서 데이터 분석으로 필요한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번 데이터 분석 지원을 통해 의미 없는 결과를 전달받을 바에야 “내가 직접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온라인 데이터 분석 강의를 듣고 파이썬을 활용해서 직접 서비스 데이터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물론 단기간에 분석을 하기 위한 온라인 강의이다 보니 실질적으로 파이썬으로 코딩을 하는 방법보다는 numpy, matplotlib 등 라이브러리 이용방법을 그대로 따라만 할 수 있고 왜, 어떻게 내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직접 파일 전처리를 하고 키워드 분석 결과나 워드클라우드를 내 손으로 만들며 유저들의 관심사를 직접 발굴해내는 과정에서 코딩에 대한 기초를 연습하고 이 작업을 내가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던 것 같습니다.

데이터 사이언스에 대한 흥미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 분야에 대해서 진심으로 흥미를 느끼고 직업으로 삼게 되더라도 그것을 단순히 일로 보지 않고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인 것 같습니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단순히 눈앞의 일을 잘 처리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해서도 대비할 수 있도록 일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 커리어를 잘 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본인이 그 활동을 즐기는 게 아니라면 나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노력을 잘 해내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전 커리어에서 저는 눈앞의 기획을 해내는 것까지는 즐길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키워나가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및 매니지먼트 능력을 기르고 기술적 전문성 없이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과정까지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그에 비해 데이터 사이언스와 관련하여 경험했던 것들에서는 단편적이어도 흥미를 느끼고 시간을 쏟아가면서라도 노력하고 즐기는 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머신러닝/딥러닝 관련 컨퍼런스 영상을 보고 관련 논문들을 찾아보거나 요약정리된 내용들을 읽으면서 너디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이 정도라면 개발 비전공자에 비록 조금 늦은 나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하면서라도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무리

맨 처음에 언급했듯이 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은 사실 누가 보라고 쓴 글은 아니고 제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쓰는 글들입니다. 그럼에도 온라인에 공개되는 글이다 보니 누군가는 우연히라도 이 글을 읽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퇴사를 한 뒤 한동안은 선택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비전공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되는 법’과 같은 검색어로 정말 많은 글들을 읽었습니다. 저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서 감히 누구에게 가이드가 되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만, 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자 혹시라도 저처럼 검색을 통해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된 분들을 위해 모두 노력하는 만큼 잘 되실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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